타이베이 길가를 걷다가 멈췄다.
화이트, 우드, 연한 녹색.
특별히 화려한 것도, 눈을 사로잡는 강렬한 색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눈에 남았다.
정갈하다는 느낌.
뭔가 완결된 것 같다는 느낌.
그 느낌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간판을 읽기 전에, 이미 들어가고 싶었다.
공간 안으로 들어서면 같은 언어가 계속된다.
하얀 벽, 우드 패널, 포슬린 타일 바닥.
강한 소재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전부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카운터는 흰색, 조명은 따뜻한 색온도.
공간이 조용하게 말한다.
여기는 차를 마시는 곳이라고.
벽에는 녹색 잎사귀 로고가 붙어 있다.
一番茶.
첫 번째로 수확한 찻잎이라는 뜻이다.
가장 이른 봄, 가장 신선한 순간의 차.
그 메시지가 로고 하나에 담겨 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잎사귀 하나가 브랜드 전체를 요약한다.
천장을 올려다보면 물결 패턴이 있다.
일본 전통 기와(瓦, kawara)의 형태를 닮았다.
브랜드 이름도 일본어(いちばんちゃ).
미학도, 재료 언어도 일본식이다.
대만에서 태어난 로컬 브랜드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 언어로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이 공간 전체에서 일관되게 유지된다.
주문을 하고 컵을 받아들었다.
흰 컵, 캘리그래피 로고, 녹색 빨대, 컵홀더.
전부 같은 색, 같은 결이었다.
공간이 말하는 것과 컵이 말하는 것이 똑같았다.
패키징 하나가 브랜드를 다시 한번 완성시켰다.
여기서 끊기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이 브랜드의 힘이었다.
캘리그래피가 컵에만 있는 게 아니다.
파사드 외벽에도 같은 글씨가 사용됐다.
붓으로 쓴 듯한 획, 살짝 번지는 먹의 질감.
캘리그래피는 단순한 서체가 아니다.
정해진 폰트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손으로 써 내려가는 글씨다.
그래서 같은 글씨라도 사람의 온기와 흔적이 남는다.
외벽에서도, 컵에서도, 패키지에서도.
공간 곳곳에 같은 글씨결이 반복된다.
그 글씨 하나하나가 그냥 로고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처럼 읽힌다.
강한 장식이 없어도 공간이 채워지는 느낌.
캘리그래피가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이곳은 차를 파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정갈함'이라는 이미지를 파는 공간에 가깝다.
이름도, 색도, 재료도, 그래픽도, 컵도.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브랜딩은 새로운 것을 더하는 작업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나의 메시지를 반복해서 말하는 작업.
강하지 않아도 된다.
일관되면 시선을 끈다.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