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중산 거리를 걷다가 멈췄다.
노란색 기둥이 눈에 확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페인트가 아니었다. 작은 정사각형 타일이었다.
타일 하나하나가 빛을 받아 미세하게 다른 각도로 반짝이고 있었다.
강렬한 노란색에 나도 모르게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아치형 유리 도어 앞에 섰다. 문에 들어서기 전, 발 밑을 보았다.
L'OCCITANE EN PROVENCE.
모자이크 타일로 로고가 새겨져 있다.
그 타일부터가 이미 브랜드를 인식하며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매장 안으로 들어서면 이 공간이 제품을 팔기 위해 설계된 게 아니라는 게 바로 느껴진다.
중앙은 광장 형식으로 상품이 진열되어 있고,
양 옆으로 아치형 구조가 공간을 감싼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타원형 스카이라이트 아래 올리브 나무 한 그루.
남프랑스 마을 광장의 그 나무가 여기 타이베이 한복판에 서 있다.
벽에는 프로방스 마을 일러스트 벽화가 펼쳐진다.
실제 마을의 집들, 라벤더 밭, 골목이 그려진 그림이다.
공간의 배경이 아니라 이 공간이 '어디'인지를 말해주는 지도다.
곳곳에 놓인 오브제들도 같은 언어를 쓴다.
프로방스 위커 바구니, 테라코타 항아리, 황금 태양 미러.
바구니 하나, 꽃 한 다발까지 모두 하나의 이야기 안에 있다.
이 매장의 모든 것이 같은 언어로 말한다 — 프로방스.
바닥을 보면 트래버틴이다.
석회암 계열 천연석인데 표면에 수평 결이 있어서,
딱 봐도 가공한 재료가 아니라는 게 느껴진다.
싱크대 상판도 같은 재료가 사용되었다.
오크 우드의 선반과 외벽의 노란 글레이즈 타일까지,
이 매장에서 쓰인 소재들이 다 비슷한 결을 갖고 있다.
모두 가공하기 전 자연에 가까운 천연 재료들이다.
락시땅이 천연 원료 제품을 파는 브랜드라는 걸 생각하면,
공간 소재 자체가 제품의 연장선이다.
이곳은 조명이 눈에 잘 안 띈다.
선반 뒤에서 새어 나오는 백라이트,
천장에서 내려오는 간접광.
낮에는 안쪽 타원형 스카이라이트로 자연광이 들어온다.
프로방스 오후처럼 은은하게 스며드는 빛이다.
제품이 따로 돋보이는 게 아니라 공간 전체가 따뜻하게 물든다.
제품 판매 공간 안에 싱크대가 있다.
손에 제품을 발라보고, 물로 씻고, 남은 텍스처를 피부로 기억한다.
샘플 한 번 찍어보는 것과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락시땅이 이 싱크대 존에 공식 이름을 붙였다.
'Ice Breaker' — 고객과 직원 사이의 첫 접촉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장치라는 의미다.
핸드크림이 핵심 제품인 브랜드가 매장 안에 싱크대를 놓는다는 건,
그냥 편의 시설이 아니라 체험을 설계한 거다.
이것은 단순한 테스트 스테이션이 아니다.
이 싱크대는 브랜드 체험의 정점이다.
락시땅은 화장품 브랜드다.
그런데 이 공간을 걸어나오면서 드는 생각은
'좋은 크림을 샀다'가 아니라 '프로방스를 잠깐 다녀왔다'에 가깝다.
이 공간 언어, 사실 이 매장 하나에만 적용된 게 아니다.
락시땅이 2017년에 전 세계 40개 이상 매장에 통일 적용한 컨셉이 있다.
'Sunshine Concept'.
노란색은 태양,
자연 소재는 라벤더 밭과 올리브 농장의 원산지,
아치는 프로방스 골목,
중앙 원형 공간은 마을 광장,
향은 프로방스의 자연.
이걸 알고 나서 공간을 다시 떠올리면,
이 매장이 결국 '프로방스 마을을 압축한 작은 무대'라는 게 보인다.
이것이 L'OCCITANE이 147개국에서 작동하는 방식이다.
공간이 브랜드고, 브랜드가 공간이다.